피가되고 살이 되는 보약

[스크랩] 지금부터 하신다면 반드시.... _()_

신령기운 2010. 8. 16. 09:12

 

우리는 하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우리는 하나입니다.

 

호흡을 한번 살펴봅시다.

 

호흡을 통해 '내몸'과 '내몸을 둘러싼 공기' 그리고 공기층을 넘어 '전 우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관념이 몸에만 머무르기에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코라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얼굴 상에서 정확히 코라는 경계가 존재합니까?

경계라는 것은 관념에 불과합니다.

몸이라는 경계(관념)에 갇혀있는 우리 자신은 단순히 몸에서만 활동하도록 되어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꿈을 꿀때, 삼매에 들때, 유체이탈을 할때 그리고 죽을 때 몸에서 벗어납니다.

꿈, 삼매, 유체이탈 시 의식의 일부는 몸에 있으면서도 나머지 일부가 다른 시공으로 나아갑니다.

죽을 때는 의식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갑니다.

의식은 다른 말로 생명이며 호흡입니다.



호흡을 통해 우주와 하나되는 것이라기 보다 이미 우리가 우주와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주와 모든 면에서 하나되어 있습니다. 

한 순간도 빼지 않고 항상 말이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의식을 우리몸으로부터 벗어나 확장하게 되면 

몸을 벗어난 외부적인 곳으로까지 의식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구반대편으로 의식이 뻣어간다면 지구 반대편의 장면을 보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내의식이 상대방 의식의 영역으로 겹쳐지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통의 원리입니다.



또한 물 속으로 의식이 나아가면 물의 성질이나 온도등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으로 우리몸을 조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지만 위와 같은 사실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원리는 완전히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의식이 우리의 몸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 물 속에 가있다면 물이라는 몸을 가진 의식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을 부리듯이 물을 마음대로 부리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초능력의 원리입니다. 초능력은 일반능력과 비교했을때 나오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초능력을 좀더 정확히 묘사하면 본능력(本能力)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본래 인간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존재였지만 욕심, 집착, 본능, 고정관념, 에고라는 한계와 경계에 의해 

그러한 능력에 제한이 생겨버린 것이죠. 동시에 자유로운 의식이 육체에 갇혀버린 것이기도 하구요.



탄트라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행위를 통해 서로의 의식이 서로의 몸으로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탄트라명상을 통해 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의식'이 완전한 하나로 되는 것이죠.

삼매든지 탄트라든지 그런 식으로 한번 몸에서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되면 점점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하면 현 육체에만 갇혀있던 자신의 의식을 

자유롭고 무한하게 확장시키거나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지금의 육신에 가둔 당사자는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오직 자신만이 육체속에 자신을 가둘 수도 있고 자유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문화나 교육으로 아무리 고정관념을 주입해도 "나는 자유로운 존재다" 라는 

완전한 깨달음(= 믿음이 아닌 앎)을 놓치지 않는다면 절대 갇히지 않습니다.

일정 의식에 이른 사람들은 쉽사리 에고에 물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너무 무한해서 무한한 능력을 유한한 것으로 가두면 또 그렇게 가두어집니다.

말그대로 아무런 제한이 없으니까요. 말로는 모순입니다.

무한한 능력은 무한해질 수도 유한해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 무한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오랜 생을 윤회하면서 스스로를 유한한 능력의 소유자로 정의했기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말이죠.

거기에 어떠한 한계나 제한, 업장 따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너무나 무한해서 우리 스스로가 업장을 인정하면 

그러한 업장의 원리에 적용을 받습니다. 

쉽게 말해 중력의 법칙을 인정하면 지구에 붙어있지만 인정하지 않는다면 공중부양이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의식이 확장되면 너와 내가 없습니다.

"너와 나"라는 것은 내 의식이 내 육신 속에만 있을때 생기는 관념입니다. 

나의 의식이 전 우주로 확장된다면 남(적)과 경계은 전부 사라지고 우주와 내가 하나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초탈입니다.



말과 글을 통해 많은 지식들을 쌓으셨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인 실천(行)과 체험으로 진리를 알아가셨으면 합니다.



'경전의 가르침'은 진리에 관한 자신의 논리와 정보를 보충해주는 '지식'이 아닙니다.

진정한 진리는 지금이순간 여기서 일어나는 완전한 체험입니다. 

경전은 성현들의 체험을 글로 적어놓은 이미 흘러간 과거의 흔적이나 참고일 뿐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글 역시 여러분이 보시는 순간에는 이미 흘러간 과거의 흔적일 것입니다.



진정한 진리는 그냥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지 논쟁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 깨달음은 대화(논쟁)가 아닌 완전한 침묵에서 일어나는 개인적 체험입니다.

제 아무리 부처라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 눈에는 동네아저씨일 뿐입니다.

부처는 부처만이 진정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남이 깨달았는지 안깨달았는지는 자신이 그 사람의 수준까지 깨닫지 못하고는 절대 알 수 없으며

깨달았다고 믿더라도 그것은 믿음일 뿐이지 깨달음을 이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석가모니나 예수님을 깨달은 자로 인정하는 것도 큰 의미에서는 대중적인 에고입니다.

많은 성현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분들이 진정 깨달은 자이고 또한 그분들의 말씀이 좋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믿는 것이지 그분들의 경지에 완전히 다다르지 않고서는 

절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판단없이 따라가는 맹목적 믿음을 이용한 것이 바로 사이비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반종교들의 가르침에도 사이비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가령 특정 성현들을 우리가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초월적인 신으로

모시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모셔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을 모범삼아

그분들의 경지로 나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은 대학생을  모셔야하는 존재라기 보다 그냥 늦게 출발한 후학일 뿐입니다.

우리는 성현들의 종이 아닌 후학입니다. 모든 존재가 전부 평등하고 아름다운 개성체입니다.

자만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을 낮은 차원의 영역으로 쳐박아 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을 당당하게 예비 성현으로 인정하시는 것이 수행의 훌륭한 출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깨달음으로 나가갈 수 있는 기회는 항상 "지금이순간" 입니다.

숙제는 숙제마감일이 있기에 벼락치기라도 하지만 깨달음은 깨달음마감일이 없기에 미루다보면

영원히 미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뭐든지 오늘부터... 지금부터... 하신다면 반드시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아주 특별한 성공™
글쓴이 : 배우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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