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잃었기에 찾을 게 이처럼 많은가? 님도, 재물도, 명예도 버린 적 없건만, 무엇을
찾으려고 허적허적 갈 길이 이토록 바쁜가.
버릴 것, 가질 것, 찾을 것 없으니 그저 구름 따라 가면 그 뿐인 걸. 허공에 낚시대를 던지니
풍월강이 걸려든다.
만고강산 낚으려고 먼 세월을 기다려도 도망치기 일쑤다. 여름 밤 막걸리 사발에 드리운
보름달을 안주 삼으니 그 무엇이 부러울쏘냐.
윗옷을 벗고 훨훨 춤을 추니 아래옷은 간데없고 발가벗은 알몸이라. 잃은 것이 없는 곳에
찾을 것은 또 무에 있겠는가.
지난 세월 그 무엇이 그토록 나를 부평초처럼 떠돌게 했는가. 이 몸은 또 어디로 가는걸까.
억센 파도만 쉬지않고 저만치서 소리친다. 내가 차라리 돌이 되어 첩첩산중에 서 있었다면
온갖 시시비비가 있었을까. 장대같은 빗줄기가 때린다. 나의 "가슴독"을 씻어줄까.
세상을 살아온 나날들을 다 먹어 삼키리라. 독약이 된다해도 다 먹어야 할 터.
철없는 이놈의 벽을 보고 앉아보지만 풀벌레 소리만 요란하다.
인천 옹진군 영흥도 산속에 머물고 있는 석구암씨(46년생)가 큰 붓을 들고 춤을 춘다.
갈망도 접고 사랑도 접어두고 흰 종이에 붓질을 해온 지 30여년 세월이다. 칼 같은 한 획 한 획이
모여 산과 바다, 만물이 된다. 가장 부드러운 먹물과 붓이 강한 기세를 만들어내는 형국이다.
1m가 넘는 붓자루를 움켜쥐고 휘젓는 모습이 힘차다.
붓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자리가 남는다. 그는 스스로를 "대지의 농사꾼"이라 부른다.
산하를 밭 삼아 떠돌며 "마음걷이" 수확을 한다. 계를 받고 중이 되고서도 그는 경계에
얽매이지 않았다. 때로는 떠가는 구름에도 눈물이 난다. 젖은 마음 말릴 길 없어 종이위에
적시면 글과 그림이 된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은 내 인생이 이젠 안쓰럽다.
부끄러워 잠 못 들 땐 벌떡 일어나 벽을 쳐 보기도 하고, 내쳐 바다로 달려가 보기도 한다.
밀리고 밀려온 살림살이 부끄러워 참회를 해 본다.
이제까지의 삶이 살기위한 삶이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얼마만큼 나를 감수하며 쓰기위한
삶을 살았는지 생각해 본다. 이제라도 쓰임의 삶을 살고 싶다. 정성스럽고 포근한 말 한마디라도
더 해 보련다.
달 밝은 밤이다. 청풍에 실려 온 달이 누구를 찾음인지 둥글고도 밝은 미소다. 어느 누가
잡을쏘냐. 미소로 흘린 물에 다시 달은 잠겨있네. 살며시 보일 듯한 얇은 옷을 입은 달아.
그 옷자락에 잠들고 싶어라. 임아 임아 둥근 임아. 안겨울 임아. 홀연히 별과 동반하여
내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러 오게.
사람들은 묻는다. 뭔 재미로 사느냐고. 그럴 땐 이렇게 말하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을 청산을
가다보면 웬 사림이 나를 보고 웃는다고. 그 웃음 우스울 사 나도 한 번 웃어보면 청산마저도
한없이 웃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