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알아차림의 수행
이 세상에 내가 수행할 수 있는 법이
8만 4천가지 법문이 있다.
그것을 요약하면 37조도품이다.
이것을 또 요약해 보면 8정도이다.
이것을 다시 또 요약하면 계정혜 3학이며, 이를 계율, 집중, 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계정혜 3학이 생기게 하는 것은
바로 알아차림 하나뿐이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전체를 다 총괄할 수 있다.
알아차림 하나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봐야 한다.
알아차리면 불선업을 짓지 않게 되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불선업을 짓게 된다.
이렇게 한순간 손가락 한 번 튕기는 1찰나간에 꾸떼떼인이 일어난다.
꾸떼떼인은 10,000,000 x 10,000,000 인데
1 찰나간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한순간을 알아차리면 그렇게 많이 알아차리는 것이 된다.
뿐더러 1 찰나간에 내가 나쁜 생각을 한다면 꾸떼떼인의 숫자만큼 많은 악업을 짓게 된다.
이와 같이 알아차림이 있어서 좋은 생각을 하게되면 그만큼 많은 선업을 짓게 된다.
그러니 한 순간이라도 알아차림을 놓쳐서 되겠는가 ?
알아차림이 있고, 알아차리면서 생활하라.
알아차림이 있고,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이 두가지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알아차림' 하나를 붙잡고 있으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 " 이렇게 항상 외워라.
부처님 당시에 경전에 통달한 스님이 있었다.
이론을 모두 알았기 때문에 금방 깨달을 줄 알고 숲에 가서 수행을 임하였으나
1년이 다 되어도 아무런 성자의 법도 얻지 못하였다.
그 스님은 안거가 끝나자 후회와 자책의 눈물을 흘렸으며
그 후 29년 동안 안거가 끝날 때마다 우셨다고 한다.
결국 그 스님은
30년째 안거가 끝나고 다른 숲을 지나갈 때
한 수행자가 우는 것을 보고
자책을 버리고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는 것은 소용이 없다.
후회와 자책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울지 말고 바른 노력을 가지고 정진해라.
사성제는 이론적 정보나 지식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과 깊은 지혜의 성숙을 통해 깨달아져야만 하는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며 깊다.
그것은 글에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일어나는 순간의 현상들에 있다
복잡할 것이 없는 것이다.
거기에는 일어남과 사라짐뿐이다.
모든 정신적, 육체적, 물체적 상태는 일어났다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가는 사라져 버리는 것.
오직 이것뿐이다.
일어나면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아라한이 될 때까지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치게 되면
다시 알아차릴 수 잇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알아차림과 노력이 줄어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
만약 알아차림과 집중과 노력이 줄어들면 탐심과 성냄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하는 것마다 탐심과 성냄이 일어나서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다.
지금 사람 몸을 받았지만
탐심으로 생활하면 사람이면서도 아귀이고,
성냄을 일으키면 사람이면서도 지옥에 있는 것과 같고,
어리석음으로 생활하면 사람이면서도 축생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알아차림과 집중과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
그러면 고통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 쉐우민 사야도 법문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