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 신비가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왕자다운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늘 문제를 일으켰다.
그래서 화가 난 왕은 어떤 방법을 써도 안되자
그를 바로잡기 위해서 궁정 밖으로 추방시켰다.
궁정을 떠난 왕자는 용서 따위는 구하지 않고서
거리의 술주정 꾼과 노름꾼, 창녀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서히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여러 해가 흘렀다.
왕은 늙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을 궁정으로 데려와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대신을 아들에게 보냈다.
첫번째 대신은 많은 수행원을 데리고 왕자가 있는 부랑아들의 집단으로 갔다.
그러나 왕자가 아예 대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두번째 대신은 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서 마을로 들어가 먼저 그 부랑아 집단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이 자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궁정 안에선 전혀 자유가 없었다. 궁정은 마치 감옥과 같았다.
그러나 부랑아들의 집단 속에서는 모두가 자유로웠다.
아무도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대신은 자기가 그곳에 온 목적을 잊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으며 영원히 왕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왕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이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는 세번째 대신을 선택했다.
이 대신은 지혜로웠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석달간의 여유를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러 떠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왕이 물었다.
"무엇을 준비하기 위해선가?"
그 대신이 대답했다.
"내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은 대신은 한 스승을 찾아갔다.
늘 깨어 있는 마음을 갖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대신이 실패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세번째 대신은 스승에게 말했다.
"내가 내 자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그 스승 밑에서 자기 자신을 기억하는 수행을 석달간 계속 했다.
그 다음에 그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서 떠났다.
그는 두번째 대신과 똑같이 행동했다.
수행원도 거느리지 않고 평범한 농부의 복장을 하고서
마을로 들어간 그는 술주정뱅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 집단과 하나가 되어 술을 마시는 흉내를 내었고 노름하는 흉내를 내었다.
심지어 한 창녀와 사랑에 빠지는 흉내까지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흉내였다.
그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다.
그는 늘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에 왔는가? 무엇을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지켜보았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서 이 지구별로 여행을 왔다.
이 별에서는 모든 의식이 중력의 지배를 받고, 또 시공의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제약을 잊기 위해 사람들은 많은 기구와 오락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우리가 무의식 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어디선가 왔으며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도중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다른 별과는 달리
이 지구에는 종교라는 제도가 생겨났다.
종교란 결국 우리가 여행자라는 사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겠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이 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제도라는 것을 좋아한다.
미지의 불안한 여행에 있어서 제도는 편안함을 주기 때무이다.
그래서 지구상에는 사람수 만큼 많은 종교가 존재하게 되고
종교 역시 다른 세속적이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심리적인 위안을 주면서
오히려 배타적인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이 되어 버렸다....
- 류시화 에세이 중에서